❖ 어느 날 ‘과달루페에 가거라.’하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에뻬밀’이란 봉사 단체의 가족 만나기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10년 동안이나 별러온 나를 위한 성모님의 배려라 생각하고, 막내딸 아네스와 함께 20일간 성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길에 함께 올랐다.
하늘에 인사드리러 가듯 스무 시간의 비행을 거쳐 멕시코 과달루페에 도착했다. 중앙아메리카인 멕시코는 90% 이상이 종교가 가톨릭이다.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멕시코가 점령당하면서 가톨릭 사제들도 들어와 선교하게 되었는데 최초로 세레를 받은 인디언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후안 디에고이다. 후안 디에고는 1531.12.9.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에 미사 참례를 가고자 테페약 언덕을 넘고 있는데 갑자기 눈부신 빛 가운데 푸른 망토를 입은 여인이 나타나 후안 디에고에게 “내 아들아” 라고 부르며 말씀하셨다고 한다.
과달루페 대성당에 도착하니 과연 세계 3대 성모발현지답게 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대성당 지하실의 무빙워크처럼 움직이는 선로 위에서 잠깐씩 기도하며, 가난한 농부 ‘후안디에고’ 성인의 망토에 떠오른 성모화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바삐 움직였다. 내 눈과 성모님의 눈이 마주치자 성모님의 거무스름한 피부와 검은 머리가 낯설지 않고 정겹게 느껴졌다.
– No estoy yo aqui que soy tu MADRE –
천막 모양으로 된 과달루페 대성당 중앙 외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내가 내 곁에 있다’는 뜻으로, 성모님이 ‘후안 디에고’ 성인에게 처음 나타나 하셨던 말씀이라고 한다.
❖ 이번 여행을 동행한 우리 딸 아네스는 유독 엄마사랑이 강하다. 엄마는 아들을 더 챙긴다고 늘 말하면서도 제 오빠보다 엄마를 독차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 딸이 시집을 가서 첫 딸을 낳았다. 자기 사랑을 보상받으려는 듯 그 아이에게 사랑을 퍼붓는데 나의 마음이 허전하다. 이건 또 무슨 질투인지…
나도 우리 딸처럼 엄마의 정을 늘 그리워한다. 딸도 공부해야 한다고 서울로 보내져 중학생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엄마는 딸로 태어나 아들인 외삼촌들보다 대학 공부를 못한 한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자기 자식에게는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와서 첫발을 내디딘 곳이 용산성당 밑의 언덕배기 마포다. 한옥이 즐비한 곳에 이모와 삼촌 그리고 나까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용산성당 종소리는 나를 위로하는 벗이었다.
언젠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가 “우리 성당 가 볼까?”고 했다. 호기심에 따라갔더니 글쎄 기도문을 12개나 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하며 그걸 외울 시간이 있겠냐 하고 말았는데, 어느 날 만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았다. 그때 환시처럼 “ 내가 있지 않느냐, 아무 걱정하지 마라.” 하는 소리가 내게 들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극한 성모님의 사랑을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