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참으로 오랜만에 인천공항을 밟았다. 여행이란 “ 길 위에 학교” 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여행은 남편 친구들과 베트남 역사를 공부하며 베트남 달랏을 탐방하기로 했다. 여행 전부터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막상 떠날 때가되니 설레임 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얼마 전 이스라엘,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아직도 코로나가 심각하다고 알려줬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6월 22일 새벽 3시 30분, 비엣젯 항공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모니터도 없고 좌석도 좁은 저가항공이다. 답답하고 지루했지만 남편의 동창 모임이기도 했고 여행비를 아끼느라 그랬다니 별 수 없이 5시간의 고행을 앉아서 견뎌야 했다. 그래도 시간이 명약이라 남은 비행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견딜 수 있었다. 비행기 창 밖으로 서서히 아침이 밝아오자 달랏(Dalat) 리언 크엉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현지 가이드 김은태 실장이 지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공항에서 다시 40분을 차로 달려 달랏 시내까지 들어갔다.
달랏은 베트남 남부의 람동성 성도다. 우리나라와 시차는 2시간이다. 달랏의 고도는 공항지역보다 500미터가 높아 1500미터로 베트남의 다른지역과는 자연환경이 다르다. 마치 예전에 설악산 갈 때 한계령을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연중 최고기온이 20-25도, 최저기온이 10-15도로 사람들이 살기에 쾌적한 도시라서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인들이 선호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프랑스풍의 빌라가 1천여 채가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베트남 통일 후 전쟁 영웅에게 달랏지역을 분할해 준것도 쾌적한 주거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달랏은 ‘오관왕의 도시’라고 불리운다. 10대 청정지역, 황토마을 , 장수마을이자 동남아 최대 소나무 군락지, 베트남 최대 침향목 군락지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나무들이 해변가에 있는 우리나라 소나무처럼 늘씬하게 키가 쭉쭉 뻗어 보기 좋았다. 신기하게도 이 곳의 소나무들은 송진이 없어 불에 잘 타지 않는다고 한다.
달랏에서는 날씨도 요술을 부린다. 5-11월까지 우기라고 했는데 아침이면 환한 봄날이었다가 오전 구경하고 점심 먹고 나면 한잠자기 좋게 2시간 정도 비가 내린다. 그 후엔 언제 그랬던가 싶게 다시 환한 날씨로 바뀌었다. 덕분에 유명한 달랏의 야경을 잘 볼 수 있었다. 비닐 하우스를 밝히는 전등불이 마치 산불이 번지듯 빛을 비추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달랏은 과거에 민생고 해결이 먼저라 자연경관을 해치면서까지 비닐하우스를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오늘날 달랏의 지역경제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것 같다. 천국의 계단을 야경으로 멋지게 해 놓은 것도 꽃을 살리기 위하여 그랬다고 한다. 달랏 어디를 가도 곳곳에 꽃이 피어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베트남 남자들은 부인에게 일 년에 5번을 꽃 선물을 안하면 이혼사유가 된단다. 발렌타이, 세계여성의 날, 베트남 여성의 날, 성탄절 그리고 아내의 생일. 그 말을 듣자 남자들은 ‘여기서 안 태어난 게 다행이야’ 하고 웅성거렸다.
다음 날, 핑크색 외관으로 유명한 도메드마리(마리아의 영역) 성당을 찾아가 기도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작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소박한 정원이 보기 좋았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어 성당이 곳곳에 많았다. 호텔 옆에 있는 성당에 주일미사를 하러 갔는데 아침새벽미사에도 미사 참례 인구가 빼곡했다. 하지만 포교활동은 엄하게 금하고 있단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통해 베트남이 커피생산 세계 2위라는 것을 알았다. 달랏 등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위즐 커피(사향 족제비가 똥을 싼 커피)는 족제비의 배설화 과정에서 카페인 성분이 사라진 디카페인 커피라고 한다. 선물용으로 커피가 제격이라 많이 샀는데 과연 다들 커피맛이 좋다고 하니 흐뭇하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베트남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름에 더운나라를 간다고 투덜댄 것이 민망할 정도로 베트남 남부에 위치한 ‘달랏’은 추천할 만한 여행지였다.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돌려서 ‘역시 난 남편을 잘 만났어요.’라고 말하니 남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