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예민해진 탓도 있겠지만 짜증을 내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이러다가는 성격이 이상해지겠다 싶어 ‘차라리 바보가 되어야지…’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이 “기운이 없어 보여요, 어디 아파요?”하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런데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순간 내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가며 반문하듯 “아뇨, 왜, 어디 아파 보여요?”하고 받아치고 말았다. 그냥 “나이를 먹어가니까 기운이 없네요.” 할 것을 금방 후회하면서도, 혹시 내가 진짜 어디가 아픈가 싶어 괜한 걱정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어깨가 아팠는데 오십견이겠지 하고 무심히 넘겼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별명이 다람쥐라 할 만큼 날렵하고 민첩해서 ‘얄미운 친구’라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기에 자만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다. 어른들이 회갑잔치를 했다는 말을 들으면 ‘인생은 육십부터’라며 혼잣말을 웃음으로 버무렸는데 아프고 보니 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제는 집안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할 만큼 목 디스크가 찾아 왔다. 아픈 어깨를 방치하자 목 근육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 온 몸을 꼼짝 못하게 했다. 행동이 굼뜨고 목을 잘 돌리지도 못하니 일상생활 하기도 버거웠다. 벼락이 때리자 이 때부터 치료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귀가 얇아져 마사지로, 지압으로, 재활의학과로, 통증클리닉으로, 한의원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해 보라는 대로 다 해보는 열성분자가 된 것이다. 수많은 지식에 몸서리를 치며 모두 해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하루는 남편이 점심을 먹자고 전화가 왔다. 맛있는 아구탕을 산다고 회사근처로 나오란다. 점심 먹고는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다. ‘나한테 뭐 말 할 게 있나, 잘 못한 게 있나?’ 반신반의 하며 가는데, 멀리 멀리 통증재활의학과 병원 간판이 보였다. 그 동안 주사는 절대 안 맞겠다며 고집을 부렸는데, 신의 가호인지 의사 선생님의 주사는 효과가 있었다. 목 디스크가 거의 완치된 것이다.
“여섯시 오 분 자세가 몸을 똑 바로 교정시켜 줄 겁니다.” 의사선생님이 덧붙여 당부한다. 육십년을 비뚤게 지냈으니 바로는 교정이 안 되겠지만 그 자세를 틈나는 대로 해보란다. 가르쳐준대로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더니 이제 비뚤어진 몸이 많이 교정되었다.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어깨가 굽었어요, 걸음걸이가 이상해요.” 해도 “이야기 해주어 고마워요”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넘기려고 한다. 노여움이나 짜증이 더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가장 현명한 행동은 한 번 더 움직이고 한 번 더 웃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무너질 듯 비스듬히 기울어 관광명소가 된 ‘피사의 사탑’을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가능하면 매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