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로 연예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출연한 여자 배우가 술잔을 들고 ‘9988 1234’라고 외쳤다. 동석한 서넛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다소 젊은 사람들이라 의미를 모르는 듯했다. 여배우가 웃으며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한 2~3일 아프고 죽자’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흔히 술좌석에서 하는 건배사 중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9988 1234’다.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 중에 이 건배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2~3년 간 코로나19 로 각종 친목 모임이 거의 중단되었다. 이제 여름 더위가 물러가고 9월이 되니 그 동안 미루었던 모임을 하자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계속 모임 약속이 잡혀서 달력에 동그라미가 연속으로 쳐 있다.
친목 모임은 주로 술자리가 많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다보면 건배사로 분위기를 띄우게 된다. 멋진 건배사 한 마디는 모임 분위기를 한층 더 빨리 고조시킨다.
나도 직장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신입 때부터 퇴직할때까지 무수히 많은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말 주변이 없는 나는 매번 어떤 건배사를 할까 고민을 해야 했다. 내심 건배사를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맛깔스럽고 유머스러하게, 때로는 용비어천가(그 날의 주빈을 칭송하는 건배사의 속칭)를 아무 거리낌 없이 천연덕스럽게 하는 친구를 보면 샘이 나기도 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건배사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건배사 자체보다 건배제의의 방식을 말해주는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건배사 그 자체보다 매끄러운 건배제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건배사가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인터넷에서 건배 제의 공식을 찾게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나처럼 말주변이 없거나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방법으로 하면 언제 어디서든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배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배제의 공식은 ‘감사인사-> 연결멘트-> 선창 후창’의 순서다.
<감사인사>는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네, 고맙습니다’ 로 시작하란다. 그리고 감사대상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하면 된다. 감사대상은 무궁무진하다. ‘이자리를 마련해 주신 ㅇㅇ님께 우선 감사 말씀드립니다.’ 또는 이 식당을 찾아 예약해 주신 분이나 맛있는 술을 말아 주신 분, 맛있는 고기를 제공해 주신 식당 사장님도 감사의 대상이다. 오히려 뜻밖의 인물에 대한 맥락 없는 감사가 더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운을 떼고 나면 한결 편한 마음으로 그 다음 <연결 멘트>로 이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연결멘트>는 ‘~라는 의미에서 ‘라는 어절을 주로 사용한다. 그날 모임의 취지에 따라 환송식에선‘ㅇㅇ님의 건승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단합 회식에선 ‘ㅇㅇㅇ팀의 단결을 기원하는 의미에서~’같은 멘트를 사용한다. 그리고 <선창 후창>으로 이어 가면 되는 것이다.
<선창 후창>은 준비한 멘트를 알려주고 설명이 필요한 멘트는 그 의미를 짧게 설명하면 된다. 즉, ‘’제가 ‘우리의 오랜 인연은’ 하면 ‘소중합니다’ 라고 답해 주세요” 하는 식이다. 글쓴이의 건배사 공식을 적용한 완전한 문장을 소개하면, “우리 ㅇㅇㅇ팀의 끈끈한 우정과 결속력이 끝없이 지속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제가 ‘우리의 오랜 인연은’ 하고 선창을 하면 ‘소중합니다’ 라고 화답해주세요”.
그리고 아래의 유형별 멘트를 몇 가지 기억해두었다가 모임 성격에 맞게 골라서 위 공식을 적용해 보자.
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건배제의를 할 수 있게 되고, 동석한 사람들에게도 한동안 깔끔한 건배사로 기억될 것이다.
유형 1. ~ 위하여
가장 일반적인 건배제의로, 선창자가 ‘~~을’ 하고 선창을 하면 ‘위하여’ 라고 후창을 하고 잔을 마신다. 이는 선창이 중요한데, 그날 모임 성격이나 동석자들의 단합을 유도하기 위한 멘트면 어떤 것도 다 해당된다
유형 2. 동일 음절
사전에 준비가 필요한 멘트. 유머나 시적인 표현 등 센스 있는 멘트로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예) ‘풀 풀 풀’ -> 남자는/ 파워풀, 여자는/ 뷰티풀, 우리모두/ 원더풀
‘걸 걸 걸’ -> 더/ 사랑할 걸, 더/ 참을 걸, 더/ 즐길 걸
‘백리 천리 만리’ ->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 등 등
유형 3. 동작을 곁들이는 건배
예) 이상은/높게(잔을 높게 들면서), 우정(사랑)은/깊게(잔을 내리면서), 잔은/평등하게(잔을 모으면서) 등
유형 4. 음절로 운을 띄우게 하기
예) 소.나.무/소중한, 나눔의, 무한 행복을,/ (다함께) 위하여,
나.가.자/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다함께) 위하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