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되신 친정노모가 혼자 시골 친정에 계시다보니 자주 들르게 되는데 어린 시절 생활하던 곳이라 엄마와의 추억이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갔다 오면 점심은 고구마였습니다. 건넌방에 큰 고구마 퉁가리 가득 담겨있어 생으로 깎아먹기도 했고 ‘큰 거는 씨앗 할 것’ 인데 먹었다고 야단맞기도 했습니다. 집집마다 양식을 아끼느라 여름이면 하지감자, 가을과 겨울엔 고구마를 점심으로 먹는집이 많았습니다.
충청도에서는 두 가지 다 감자라 불렀습니다, 사투린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고구마가 ‘고귀한 마’였다는 것을…. 난 뜨거운 밥을 싫어해서 고구마를 넣고 지은 밥은 안 먹고 밥투정을 하곤 해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었지요. 연탄도 없던 시절 아궁이에 불을 지펴 다시 밥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면 상위에서 미끄럼 타던 동치미와 찐 고구마가 먹기 싫어 무우밥이나 시래기 밥을 해달라고 졸랐었습니다. 참 철이 없었지만 지금은 엄마도 안계시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입니다.
지금은 고구마가 여러 종류지만 그때는 물고구마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호박고구마가 인기지만 그 당시는 밤고구마가 훨씬 귀했지요. 학교 선생님이 공부가 끝나면 공설시장에 가서 고구마 사오라면 좋아서 심부름을 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심부름했다고 하나 주시던 밤고구마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구마도 자색, 호박 , 밤고구마 등 골라서 사먹는 시대가 되었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고구마를 싫어하던 제가 나이 들어 부드러운 고구마 케잌, 고구마 라떼 애호가가 되었으니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고귀한 마’를 홀대했던 저도 고구마가 억울한 작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두배로 미안해집니다. 이제는 고구마를 좋아해서 일부러 사 먹습니다. 주식으로 먹기도 하고 시래기밥, 무우밥도 고급요리처럼 별미로 해 먹습니다. 판소리를 듣다보면 “옛것이 좋은거여”에 “맞습니다.”하며 따라 흥얼거립니다. 안 먹던 것을 찾아 먹는 나이 이순(耳順)이 되니 식성도 순해졌나 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빙그레 쳐다보실 엄마에게 소중한 추억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