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북스

말보다 실천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녀는 동생이 둘이나 있어 엄마의 손길이 셋으로 나눠지니까 외할머니인 나와 친했다. 개나리가 만발한 4월 어느 날 일이었다. 애들 엄마는 회사에 출근하고 난 뒤 학교 끝난 후 가보았는데 뚱 하고 불어 있었다.

 이유인즉슨 … “학교에 다녀와서 피아노 꼭 가고, 돌아와 좀 쉬었다가 영어하러 갔다가 와서 늦지 않게 독서토론 가야해.” 명랑하고 혼자서도 자기 일을 잘 하는 손녀는 “엄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하고 씩씩하게 인사했고, 출근하는 엄마는 아이에게 핸드폰은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런데 아이가 피아노 가면서 핸드폰 넣는 걸 깜빡했는데 집에 다시 가려니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친구들과 놀다가 가져와야지 하다가 그만 엄마가 부탁한 말을 잊어버렸다. 엄마는 직장에서 혼자 있는 아이가 걱정되니까 전화를 자주 하는데 오늘 따라 안 받으니 속이 타들어갔다. 신호는 가는데… 안 받고 하니까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것도 모른 채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 팔려 영어학원 셔틀버스 올 때까지 계속 놀았다. 엄마는 아랫집 엄마한테 현관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아이가 자는지 가보라고 했는데 가보니 어디에도 없다는 소리에 찾을 방법이 없자, 친정엄마인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이가 전화를 안 받아 ? 우리 집에 빨리 가보세요.”

 부랴부랴 뛰어가서 이름을 부르며 찾았지만 아무데도 없고 핸드폰만 울리고 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유괴를 당했나, 누가 잡아갔나, 오락실엘 갔나. 불길한 생각과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두 시간이 넘게 집 주위를 찾아다녔다.

 ‘주님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저한테 벌을 주시고 아이는 무사하게 해주십시오,’ 저절로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터덜터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답답한 마음에 딸한테 전화를 했다.

 “영어학원 갈 시간이니 기다려보세요”  

 그리고 잠시 후, 아이가 영어 학원 셔틀버스를 탔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구, 주님 감사합니다.”

 아이가 셋인데도 아침부터 어린이집으로 둘을 맡기고 하나는 초등학교에 보내는 딸아이! 돈 벌겠다고 직장에 다니는 게 안쓰러워졌다. 정말 미안했다. 내가 자기발전이 어떻고 하며 내 생활만 할 때, 늘 허둥대는 딸아이였을 테니… 이제는 아이를 잘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의 해프닝이 불행 중 다행으로 나를 깨우치게 했으니 효과 아닌 효과를 본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글을 씁네, 어쩌네 하며, 여행가기 바쁘고 아이들 안 돌봐주고 생활하기 바쁘다. 그 때 놀랐던 마음에 주님께 약속했던 절규는 어디가고, 오늘도 “혼자서도 잘해요~” 하고 문자를 보내곤 한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함을 다시금 실감한다.

글쓴이

시인 김선희

김선희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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