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북스

명절 유감

"도둑님 감사합니다."

 명절이 코앞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아파트 마당에 배달할 물건들, 그것을 나르는 택배기사들의 손이 분주하다. 이런 광경을 보며 첫해 명절전야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탈출했다. 3월에 결혼하고 10월중순경 추석이었는데 시댁은 시골이어서 첫아이 임신한지 3개월 정도 되었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종가의 맏며느리라 전날에 가야했다. 임신초기라 잠이 살을 꼬집어도 밀려왔지만 남편은 시동생 오토바이를 타고 오랜만에 내려온 고향이라며 친구네 집엘 놀러가고 난 다른 식구들은 함께 차례준비로 바빴다. 요즈음 같으면 “어딜 가요 함께 일해야지.“ 항변이라도 할 텐데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남편은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 연락도 없고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저녁때 빗방울이 쏟아지니 화났던 마음이 사라지고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동네분이 급하게 뛰어오며 ‘이집 큰아들이 탄 오토바이가 낭떠러지 논으로 굴러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시아버님은 종손인 큰아들의 날벼락 같은 소식에 어느새 병원으로 가셨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결혼 한지 일 년도 안 됬는데 방정맞은 생각만 들었다. 기도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눈물이 쏟아졌지만 속울음만 … 저녁 10시쯤 되자 칠흑 같은 어둠이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때 수런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리더니 시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이 남편과 오는 것이 아닌가, 눈을 비비고 봐도 멀쩡한 남편. 난 그때서야 소리 내어 울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안경을 쓴 덕분에 눈을 안 다쳤고 옆구리에 상처가 난 곳을 치료하고 여기저기 엑스레이 찍고 안정제를 맞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친구와 놀다보니 늦어져 빨리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빗방울이 떨어지자 시골길에 익숙지 않은 논길에서 속도를 내다보니 낭떠러지 길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휘어진 낭떠러지 논으로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떨어지는 순간에 ‘이게 죽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동네 분들은 시아버님이 동네 궂은 일 다 보며 착하게 살아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는데, 사고 후 오토바이만 봐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할 만큼 시부모님은 저승사자 같다며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부전자전인지… 3개월 때 뱃속에서 들었을까, 아들이 대학생 때 오토바이 타고 싶다고 조르는 것이었다. 당연지사 식구들이 안 된다고 하니 그대로 수긍하기에 “역시 모범생 답다.” 는 말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세상에 비밀이 있던가, 며느리와 연애할 때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부모님 몰래 오토바이를 사서 학교에 갈 때 타고는 저녁에는 오토바이에 가게에 보관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는 걸어서 모범생 행세를 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했나 보다. 얼마나 타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하다가도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아들은 벌려놓은 일을 수습도 못하고 의사고시 준비는 해야 하는 고학년이고 진퇴양란일 때 신의 가호였는지, 가게에 보관해 놓은 오토바이를 도둑님께서 가져가셨단다. 계속 부모님께 거짓말하기도 죄송하고 지치기도 하여 구두쇠였던 아들이 돈이 아깝긴 했지만 그 때부터 오토바이타기를 그만뒀다는 기막힌 내 아들의 비행스토리를 부모만 몰랐던 것이다.

 내 마음도 내가 잘 모르면서 내 아들이니 나의 아들 마음을 안다고 자부했던 나, 도둑님께 감사하는 그 사건은 명절이 다가오면 남편의 비화와 더불어 부전자전의 모범생 스토리 공동 메뉴이다.

글쓴이

시인 김선희

김선희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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