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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말센스

대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청의 힘을 발견하다.

 나는 내성적이고 말솜씨도 뛰어나지 않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이 힘들게 느껴지곤 한다. 사교적인 모임이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회의나 토론에 참석하는 것은 한 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되는 일이다. 긴장된 상태에서는 내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더욱 어렵고, 그러다보니 말실수를 하거나 원치않는 말싸움에 휘말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말센스라는 제목에 끌려 이 책을 골랐다. 저자 셀레스트 헤들리는 1999년부터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뉴스와 토크쇼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방송인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20년간 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얻은 대화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제목은말센스이지만 대화 기술에 대한 내용보다는 인간관계에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에 대한 내용을 더 많이 다루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1)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과 2)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관심과 호기심을 갖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경청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학자인 찰스 더버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대화 속에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성향을대화 나르시시즘이라고 칭했다. 성향은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대화를 이끌면서, 대화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놓고자 하는 욕망으로, 스스로는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전환 반응은 대화 나르시시즘의 주된 특징이다. 전환 반응은 관심의 초점을 끊임없이 자신을 향하도록 한다. 반대로 지지 반응은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략) 때때로 우리는 초점을 바꾸기 위한 자신의 시도를 매우 교묘하게 위장한다. 우리는 상대를 지지하는 듯한 언급으로 시작해서 우리 자신에 대한 언급으로 말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예컨대 친구가 당신에게 방금 승진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잘됐다! 축하해. 나도 내 상사한테 승진시켜달라고 해 볼 생각이야. 승진이 되었으면 좋겠네.”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도 자신의 이야기로 끝맺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 친구를 결국 손절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 친구를 견디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런 모습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직면하기 괴로웠던 것이다. 자기중심적인데다 N성향까지 강한 나는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면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내 경험담이 떠오르곤 한다. 이러한 자극반응 패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쳐왔는가. 내가 한 없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때부터, 깊은 대화란 내 자신의 얕음을 들여다보는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 되었다.

 흔히 나타나는 대화 나르시시즘의 또 다른 형태는 상대에게 설명하고, 훈계하려 드는 것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는 사람일수록 선생님이 되고 싶은 욕구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 틀린 것을 굳이 지적하고 싶을 때, 혹은 나와 다른 의견에 반박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그것이 내 마음 속통제병관심병의 발현이라는 것을 자각하자.

 〖왜 사람들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길게 설명하려는 것일까? 단순히 수다를 떨고 싶기 때문일까? 수다를 떨고 싶다면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되지 굳이 왜 남의 상황까지 끌어들여 이야기 하는 것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일종의 통제 본능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나 조언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관심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에서도 충고나 조언을 유독 많이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친구라 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모두 자신보다 학력이 낮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가난하거나, 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통제병이나 관심병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진심의 경청: 대화에서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알아보는 법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경청할 때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심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온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귀 기울여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알아봐주고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진심을 다해 듣는 대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당신은 자아가 사라진 빈 공간으로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드러난 지식과 관점, 통찰, 경험들에 압도 당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만 몰두하느라 지금까지 듣기를 거부해 온 이야기들을 비로소 듣게 될 것이다. 무언가 배우려는 태도로 모든 대화에 임한다면, 당신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욕망을 참으면 대화는 배움의 장이 된다. 그러나 에고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에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라니처럼 날뛰며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러니 경청이야말로 에고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수양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밤에 아이를 재우려고 나란히 누워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만히 숨소리를 들을 때 순수한 사랑을 경험하곤 한다. 아이는 눈빛으로 말을 걸고 나는 그저 듣는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나를 내려놓고 상대에게 모든 주의를 기울일 때, 상대도 자신을 알아보는 나를 알아본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대화의 힘은 이런 순간들에서 오는 듯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라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의도적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것은 진실되지 못한 것이며, 그러한 느낌은 상대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머리를 끄덕이면, 상대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해온다. ‘듣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머리를 끄덕여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계획적으로 행동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체하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느라 대화 자체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것이다. 인위적인 끄덕거림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전문적인 배우들 뿐이다.

 저자는말센스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화의 주인공이 되려는 욕구를 참아내고, 상대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 쓸데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꾸며내기 위해 대충 아는 것을 잘 아는 척 하지 않는 것과 같이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라고 말한다.

 그 동안 대화 중 잠시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고 성급한 대답을 하다가 말실수를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위로를 하겠다고 비슷한 내 경험담을 늘어놓아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은 적도 많았고 심지어 그것이 공감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잘못된 대화습관을 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소위말발 좋은사람이 되기 위해 화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대인관계에 자신 없는 소심한 I형이라면 대화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그저 진심을 다해 듣고 상대방이 계속 말하게 하라는 것. 그것이 기본임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수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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