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E-메일을 보내왔다.
‘아빠 프로필 사진 나왔어요. 지난번 사진 수정본인데 정말 잘 나왔네요’
얼마 전에 시집에 실을 프로필 사진을 전문 사진작가에게 가서 찍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꽤 오래전부터 내 얼굴 사진 찍는 일을 가급적 피해왔다.
나이 든 모습도 보기 싫었고 사진사 앞에서 자세를 잡고 이리 저리 표정을 연기하는 것도 어색하고 싫었다. 매일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볼 때는 잘 못 느꼈지만,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내가 이리 늙었나 싶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그것을 보고 있기가 싫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집 프로필 사진을 찍자고 하면 나는 과거에 잘 나온 사진이 있으니 그것으로 하고싶다고 하며 사진 찍기를 차일 피일 미뤄 왔다.
결국 딸애가 막무가내로 사진작가에게 예약을 한 모양이다. 아내에게 내일 오후에 사진관에 가야 하는데 미장원에 가서 아빠 머리 손질을 하시게 하라며 최후 통첩하듯 연락이 왔다. 나는 그럴 것까지 없다고, 이발한 지 얼마 안 되니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말렸다.
다음날 내가 어떤 차림으로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딸애가 일찍 집으로 왔다. 내 얼굴을 보더니 화장대 앞에 앉히고 얼굴에 썬크림을 바른다. 사실 딸애는 직장 생활 하기전에 화장법과 옷 입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그 사람의 얼굴에 어울리는 색조가 있어서 화장색도 달라야 하고 남자는 넥타이, 여자는 스카프의 색도 달라야 한단다. 물론 입는 옷의 색상도 얼굴색 톤에 맞춰 입어야 스타일이 산단다.
그렇게 시작된 내 얼굴 화장은 눈썹 손질로 갔다. 길게 쳐진 눈썹은 끝을 자르고 웃자란 눈썹은 가지런히 다듬었다. 그리고 아이섀도우를 잡기에 나는 기겁을 했다. 눈썹을 검게 칠하는 것은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딸애가 빙긋 웃더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표정을 하며 막무가내로 양 눈썹에 바른다. 잠시 후 내가 눈을 떠 보니 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새하얗지도 않게 잘 어울리는 눈썹이 내 얼굴을 반듯이 잡아 주었다. 나는 은근히 흡족한 마음을 누르며 예약한 사진관으로 함께 갔다.
알고 보니 사진작가는 손녀 돌잔치 때, 한 나절을 집 안팎을 다니며 셔터를 누르던 그 작가였다. 그 때 사진이 좋아 집에 액자로 보관하고 있는 기념 사진도 있다. 나는 사진작가의 요구대로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자세를 잡았다. 장소는 스튜디오가 아닌,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 쌓인 카페인데 프로필 사진 촬영 때 마다 이용하는 모양인지 요구하지 않는데도 주인이 알아서 테이블을 정리해 주었다.
사진작가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옆에서 카메라를 지켜보던 딸애와 아내가 분위기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괜히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을 촬영한 후 약 30컷 정도를 보여주는데 내가 봐도 사진이 모두 괜찮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부산 큰 손주가 그려준 초상화가 생각이 났다. 아이가 5살 때쯤인가 A4용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내모습이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노윤성’ 이라고 삐뚤 빼뚤 쓰고 화면 가득히 내 모습을 그려넣었다.
안경을 쓴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칼은 검게 칠했다. 파란색 상의에 빨강바지를 입고 있는데 당시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내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만화 같은 그림이지만 내 마음에 들어 지금도 서재 책상 머리맡에 세워두고 있다.
때로는 그 그림이 순수한 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그림속의 미소를 일부러 지어 보곤 했다. 그러다가 손주아이를 바라볼 때만 그 표정이 나오지 싶어 억지 미소를 짓다가 멋쩍어 씁쓸하게 웃는다.
초상화는 미술사에서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인 고대시대부터 있었다. 중세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대권력자들이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도구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런 경우 초상화는 권력자의 주문에 의한 그림이기에 그려진 인물의 자기과시와 정치적 의도가 드러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의 권력이나 인품, 식견 등이 은연중에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권력자의 주문에 따라 화가가 왜곡하거나 과장하여 그린 그림도 밖으로 그 의도가 드러나는데, 하물며 내 초상화는 동심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이니 순수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리라. 나에게는 소중한 초상화이다.
일주일 후 딸아이가 노트북에서 사진 30여장을 펼치더니 그 중에서 좋아 보이는 10장을 고르란다. 30여장 모두가 좋아 10장을 고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연출된 사진이지만 표정이 자연스럽고 알맞은 조명 탓인지 사진속 분위기가 온화하다. 내 앞에 놓인 책과 펜이 서고(書庫) 가득히 빼곡하게 꽂힌 배경의 책들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특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내 목에 수술 후 달고 있는 인공호흡기의 노출이다. 옷깃으로 감춘다고 감추었는데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내 마음을 알아챈 딸아이가 웃으며 ‘아빠 그것은 걱정 마세요. 사진 수정을 하면 감쪽같이 없애요’ 한다.
아, 나를 드러내야 하는 내 시집의 프로필 사진이 내 참 모습의 사진이 아니구나. 그래도 되나?
순간 유명한 예술품으로 평가받는 초상화들이 떠올랐다. 힘과 권위의 상징 헨리8세의 초상화, 나폴레옹의 멋진 말 탄 모습의 초상화,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붕대감은 자화상 등…..
더불어 손주 아이의 내 초상화가 사진작가의 사진과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거울 속 벽면에
초상화 하나 걸려있다
아이가 그린 안경이 인자한 눈으로
입꼬리와 함께 웃고 있다
정말 그런가 자세히 깊숙이
옆에 앉은 눈을 들여다본다
웅크린 동굴 속 벽면을 더듬는다
익숙해진 빛 앞에서
글자들이 하나씩 먼지를 털고 일어선다
아무도 본적이 없는
나만이 해독 가능한 상형문자
풍랑에 너덜거리며
마침내 포구에 다다른
옛 범선의 항해일지인 듯
아득하게 읽힌다
누가 남겼을까?
빠르고 거칠게 주름진 손바닥으로 먼지를 훔친다
동판 위에 부식된 흔적
살아서 송충이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음각의 깊이만큼 머리속으로 파고든다
오금이 저려 다리가 떨린다
목구멍에 불잉걸 한 덩이 삼켰다
아, 생살을 저미고 드러난 뼈를 깎아도
지울 수 없는 내 몸 속 뚜렷한 기록물
아이가 알아볼까 두렵다
거울 속 초상화가 부끄럽다『자화상』 - 이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