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 다 함께 외식을 하려고 식당을 예약해 놨다는 아내와의 통화가 들린다.
어버이날이 월요일이라 부득이 일요일 저녁시간으로 잡았단다. 그런데 정작 하루전인 토요일 오전에 다시 전화가 왔다.
딸애가 갑자기 독감에 걸려 엄마 아빠만 가면 안 되냐고, 아빠한테 감기 옮길까 봐 자기 부부 둘은 이번에
함께할 수 없어서 부득이 2인은 취소를 했는데 2인은 가야 할 것 같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다.
딸아이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잘 들리지도 않았고 아예 다른 사람 목소리처럼 들린다.
요즘 독감이라면 얼마전 아내가 걸려서 병원에 가고, 약을 처방받고 하며 열흘이상을 고생한 적이 있다.
한달이 지난 지금도 아내의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온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 우리 것도 취소하라고 했더니 비용을 선불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이번에는 그냥
두 분만 맛있게 드시고 오시라고 한다.
찜찜한 마음이지만 일요일 저녁 7시에 맞춰 식당을 찾아 나섰다. 딸애가 보내준 약도를 들고 시간 맞춰 도착했다.
식당을 미리 검색해 보니 스시 집이었다. 저녁식사 가격으로는 결코 만만치 않았으며, 특이한 것은 사전 예약 손님 몇 팀만
받는 모양이었다. 딸애 말로는 4인을 룸으로 예약했는데 2인을 취소하면서 홀 좌석으로 예약이 변경되었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룸보다 홀 테이블이 식사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어쨌던 우리는 ‘ㄱ’ 자형으로 된 홀 테이블에 안내되어
자리를 잡았다. 홀 테이블에서는 눈 앞에서 요리사의 요리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며, 재료와 먹는 방법을 요리사가
그때 그때 바로 설명을 해주니까 색다르게 요리를 즐길 수도 있었다.
우리 부부 외에 ‘ㄱ’ 자형 맞은편 좌석에 부부와 자녀인 4인 가족 한 팀, 그리고 우리 옆자리에 젊은 친구 1인
이렇게 해서 7명이 오늘 저녁 손님 전부였다. 내가 이렇게 자세히 손님과 식당을 설명하는 이유는 이제부터 이야기할
이 가게 분위기와 요리의 맛 그리고 요리사와 직원들의 근무자세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팀은 우리처럼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이 외식을 나온 듯하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젊은 듯한 중년 아빠는
술을 좋아하는지 준비해 온 일본 정종 한 병을 요리사에게 넘겨주었고 요리사는 작은 주전자에 옮겨 담아 얼음으로 차갑게
온도를 맞추어 다시 건넨다. 그리고 각양 각색의 술잔(사케술잔)이 가득 들은 상자 속에서 술잔을 고르게 한다.
남편은 금색 사케잔을, 부인은 푸른 빛이 도는 유리잔을 골랐다.
요리사가 식사 시작 전에 재료와 먹는 법을 제법 길게 설명한다.
이식당은 7시 디너에 예약한 손님들이 착석하면 바로 식사를 시작하며, 디너는 2시간 동안 1부만 운영하니 편하게 천천히
식사를 즐기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밥, 간장, 겨자 등의 양이 과한지 어떤지 그때 그때 바로 이야기 해주시면 각자의 입맛에
맞게 마추어 내어 준다며 다소 긴 설명이 이어졌다.
본 요리인 스시 시작 전에 전채 요리를 옆자리 청년에게 내주며 먹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계란 노른자를
휘젓지 말고 젓가락으로 위에 얹힌 요리를 먼저 찍어 먹고 나중에 밥알을 비벼 먹으라는 것이다.
그 다음 순서인 우리 앞에도 요리를 내주며 똑 같이 설명하는데 건너편에 앉은 가족팀의 딸이 엄마 아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맛있게 드세요 하고 웃는다.
자기들 앞에 놓인 전채요리에 대한 요리사의 설명이 끝나자 아들과 딸은 진한 녹색의 녹차 한 잔씩을
들고 가족이 모두 유쾌하게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힌다.
내 옆의 청년이 혼자 말없이 녹차를 곁들여 전채요리 먹는 모습을 보고 혼자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요리사의 첫인상이 과묵한 듯하여 자신만의 영역 전문가들 만이 풍기는 특유의 인상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요리할 때만 나타나는 진지한 모습이며 나의 기우였다. 자신의 요리를 설명할 때는
정중하고 진심을 다해 한사람 한사람에게 열정을 다해 설명을 해 준다. 자신감이었고 자존감이 느껴진다.
그런 만큼 그의 요리는 입안에서 오래 감칠 맛을 남기며 맛이 있었다.
나는 나오는 요리마다 먹기전에 매번 앞에 준비된 무나 생강을 먹고 물로 입안을 행궜다.
홀 서비스 직원은 그때마다 바로 내 컵의 물을 채워주었다.
요리사는 매번 요리를 준비할 때마다 돌아서서 자신의 손은 물론 칼과 행주를 반드시 닦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과거 아프기 전에 요리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다녔던 직장은 직원이 퇴직하면 원만한 사회 적응을 위해 약간의 전직 지원금을 지원해 주었다.
나는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퇴직 동료와 함께 취미삼아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종로에 있는 요리학원으로 3개월 과정의 요리 실습이었다. 전문 요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젊은이가 대부분이었고
나이든 사람은 취미 삼아 배우는 우리 둘 뿐이었다. 한식과 중식, 일식까지 약 50가지 이상의 메뉴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첫 강의 때 선생님은 ‘모든 요리의 성패는 요리할 때 쓰는 칼과 수건 그리고 모든 식기의 청결이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저 요리사는 그것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더하여 손님에게 깨끗한 물수건과 매 음식마다
스푼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나는 갑자기 사진을 남겨야 겠다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눈짓을 하니
아내가 요리사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요리사는 물론이라며 자기도 예쁘게 찍어 달라며 웃는다.
나는 휴대폰으로 요리사의 모습과 요리를 자세히 찍었다. 아내는 집에 있는 아이들이 궁금해할 테니
사진을 전송하자고 한다.
내가 그때까지 찍은 사진들을 딸애에게 보냈다. 맛있는 식사를 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멘트와 함께.
건너편 테이블을 보니 중년 신사가 멋있게 술잔을 기울인다. 벌써 얼굴이 환하게 펴져 행복한 표정이다.
나도 아프기 전에는 술을 마시고 즐길 줄도 알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어져서
아내에게 손짓으로 마시는 시늉을 하며 동의를 구했다. 아내는 놀란 눈으로 안된다고 하다가
눈앞의 요리를 보더니 씽긋 웃었다. 내가 휴대폰에 ‘사케 한잔 주문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문자를 찍어
요리사에게 보여 주었고, 요리사는 웃으며 한잔은 안되고 도쿠리로 나오는데 5잔 정도 된다고 한다.
나는 메뉴판에서 도쿠리 사케 하나를 주문했다.
아내도 알레르기 비염으로 술을 마시면 매번 나중에는 후회하지만 자기도 한잔 달란다.
잔을 부딪히고 한 모금 천천히 입안에 머금었다. 이 기분 실로 8년만이다.
올해 초 가족 모임때 무알콜로 기분만 내었고, 얼마전 동생들을 만났을 때는 맥소 한잔을 마신 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분위기상 마셨지만 지금은 몸이 원해서, 뇌가 기억하는 취기의 느낌을 원해서,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니
온몸의 세포가 일렁인다. 조심스레 목구멍으로 넘기고 앞에 있는 참돔 스시 한점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밥을 품고 있는 참돔의 살점이 두어 번 어금니를 거쳐 혀로 옮겨지자 입안에 남아있던 사케의 쌉쌀한 맛과 어울리며
목구멍으로 넘어가길 주저한다. 그래 이 맛이다.
2시간 동안 몇가지 스시를 먹었는지 세어보지를 못했지만 약 20개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식사 한 시간쯤에 배가 부르다며 요리사에게 자기는 스시 속에 밥을 빼 달라고 한다.
나는 아직 괜찮다고 했다. 사실 스시의 맛은 밥을 품고 있어야 제 맛이다. 나도 배가 부르지만 그 맛을
알기에 내게는 밥을 반으로 줄여 달라고 했다.
요리사는 밥의 온도와 질감을 위해 몇 번이고 밥통을 뒷 주방으로 가져 가서 적당량만 퍼 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밥에 혼을 불어넣듯이 손바닥의 섬세한 악력으로 뭉친 후, 엄지와 검지의 지문을 이용해 예리하게 조절한
겨자나 파 가루의 양을 얹는다. 그리고 잘 썰어진 재료들 (도미, 갑오징어, 갯방어, 민자리, 가리비관자, 남해산
간새우, 성게, 청어, 참치, 고등어, 아나고, 등등) 로 감싼 후, 그 위에 간장이나 기름 등을 재료들과 어울리게
각각 다른 소스를 바른다.
그리고 다시한번 두 손가락으로 모양을 잡아서 완성된 스시는 매번 닦아낸 앞접시에 한 점씩 올려준다.
재료가 흩으지기 쉬운 스시 (예: 김으로 간새우와 성게알을 싼 요리) 는 직접 손으로 건네 주고
우리는 손으로 받아서 먹는다. 위생은 걱정이 없었다.
우리 앞에는 매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닦을 수 있게 손가락 수건이 따로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리가 손으로 건네질 때마다 멋진 예술품처럼 눈으로 감상하며 조심스레 먹는다.
여기서 많은 요리를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특이한 요리 한가지를 소개하면, 고등어 김밥이다.
먼저 고등어의 뼈를 발라내고 살점만 통으로, 마치 김처럼 얇게 도려낸 후 다시 뒤집어 비닐을 벗기듯
등껍질을 벗겨낸다. 나는 고등어 등에 비닐 같은 껍질이 있는 줄 그때 알았다.
그렇게 마련된 살집을 펴서 김밥 말 듯이 둥글고 길게 말아 겉에 기름을 발랐다. 그리고 김밥처럼
칼로 7등분하여 정확히 7인분을 만들어내었다.
사실 맛은 고등어 맛이 너무 강해서 고등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냥 그럭저럭 먹었지만,
고등어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눈과 입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시간의 식사가 끝날 무렵 요리사가 ‘이제 디저트가 남았는데, 그전에 가장 맛있게 드신 것 중에서 한가지를
말씀하시면 여기 있는 재료에 한해서 서비스로 한점씩 준비해 주겠다’고 한다. 생각하다 보니 이 또한 재미있는 발상이다.
손님은 2시간 동안 자기가 먹은 음식을 기억해 보게 되고 그 맛을 머리속에 한번 더 기억시킬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속으로 다음을 또 기약하게 되겠지. 맛있는 만큼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다.
아내는 배가 부르다며 사양하면서도 참돔이 맛있었다고 했다. 나도 참돔이 기억 났다.
술 주전자에 아직 1/3정도 남아있는 사케를 한 잔만 더 따라 흡족한 마음으로 마시고 서비스 참돔
한 점을 안주삼아 먹었다.
디저트는 꿀과 콩가루 위에 브루베리 한 점을 올린 아이스크림이었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2시간 동안
비린 생선요리에 둔감해진 입안을 시원하게 다스려 주었다.
오늘 눈앞의 저 요리사는 주어진 재료에 자신의 실력과 온갖 정성을 다해 아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었고, 동료들과 함께 진심을 다한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가게를 찾은 손님이
최상의 만족감을 느끼도록 애쓰고 있음이 틀림없으며, 나에게 그것이 전해진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직업 정신이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써의 자존감의 표출이다.
글밭에서 수많은 어휘 중 내 의식에 맞는 단어들을 골라 운율을 입히고 넘치는 부분은 사고의 칼날로
잘라내고 다듬어 독자의 몸에 내 경험의 의식을 잘 전할 수 있는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고민하는
나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자 요리사가 작별인사를 한다. 명함을 부탁하여 받아보니 식당 대표가 바로 요리사 자신이었다.
언젠가 특별한 날에 딸애부부와 함께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요리사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