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9일. 부활절 아침이다. SNS 단체 대화방에 성당 교인들이 서로서로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아내가 성당을 다녀와서 부활절 달걀을 주며 먹어라고 한다. 예전처럼 예쁜 그림이나 염색이 없다. 요즘은 부활계란을 꾸미지 않는가 보다. 계란 껍질을 깨어 한 입 베어 먹었다. 잘 삶은 계란 흰자의 쫀득한 촉감과 노른자의 포슬한 식감이 침샘을 자극한다.
천주교에서는 부활절에 부화와 풍요의 상징인 계란이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되어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부활계란을 먹는다. 그러고보니 내가 성당 미사에 참석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기관 절제 수술을 한 이후로 가래가 목에 차서 그 때마다 빼내 주어야 하는데 마치 정상인이 코를 풀듯이 컥컥 소리를 내어야 한다. 조용하고 엄숙한 미사시간에 그런 소리를 낼 수 없어 성당을 가지 못했고, 조금씩 적응하면서 부터는 말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우들 만나기가 꺼려져서 가지 못했다. 그후 점차 게을러진 나는 이제 일요일에 집에서 게으름 피우는게 편하게 되었다. 이른 바 냉담 중이다.
부활절은 해마다 춘분이 지난 만월(滿月) 후 첫째 일요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3월22일~4월25일 사이가 된다. 영어식 표현으로 이스터(Easter)이고, 계란은 이스터 에그(Easter egg)인데 이는 봄의 여신인 에오스트레(Eostre)에서 왔다고 한다.
매화 진달래 벛꽃 등 온갖 봄꽃이 피어나는 이 시기에 박태기 나무로 알려진 꽃이 핀다. 다른 꽃보다 다소 늦은 부활절을 전후해서 피는 우리말로는 박태기 나무, 밥알을 닮아 붙여진 이름(경상도에서 밥알을 밥티기라고함)이다. 이 박태기 나무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온 나무인데, 유럽에는 서양 박태기 나무라는 다른 이름의 나무가 있다. 우리말로 유다나무인데 같은 콩과의 종(種)이다. 유다는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배신의 아이콘인 가룟 유다를 말한다.
예수의 제자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은30을 받고 예수에게 다가가 입맞춤 함으로써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는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나무에 목을 메어 죽는다.
그가 목을 멘 나무가 서양 박태기 나무란다. 낙엽관목으로 3~6m로 자라며 꽃은 진홍색으로 가지에 다닥 다닥 붙어 핀다. 골란고원에서는 간혹 흰 꽃이 피는 경우도 있는데 그의 죽음으로 선홍빛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인간의 배신. 성경에는 또 하나의 배신이 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나를 세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유명한 시몬 베드로의 배신이다. 의심과 두려움이 그 두 사람에게 배신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 후 한사람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인생을 살았지만, 한 사람은 비참하게 목을 메고 죽어 2천년 동안 배신자로 기록되어왔다.
나는 이런 유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해마다 사순절에 진홍색의 꽃을 가지마다 울컥울컥, 마치 피를 토해내는 것 같이 유다나무가 꽃을 피우면 나는 성경 속 가룟 유다를 떠올려 본다.
이제는 용서해 줘야 하지 않을까? 아니 예수는 진즉에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까?
그에게서 주홍 글씨를 지워주고 싶다.
부활절에
유다나무의 절규를 본다
목을 멘 가지 끝으로
울컥 진분홍 피를 토한다
목을 타고 흘러내려
가슴골에 새긴 주홍글씨를
올해도 다시 쓴다
입이 가벼워
믿음이 가벼워
여린가지 하나면 충분했으리
죄가 무거워
배신의 입맞춤이 무서워
창 끝보다 뾰족한 가지 하나 골랐으리
해마다
용서를 빌고 빈다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또다시 천년을 후회하고 있다
인간의 가벼움
신은 진작에 알았다
용서는 예정된 사랑의 수순
그대 유다나무여
다음 부활절에는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리
*유다나무: 서양의 박태기나무를 일컬음.유다나무에 꽃이피면 - 이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