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자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다.
산책로는 물론 이어진 산기슭과 잣나무 밤나무 할 것 없이 모든 나뭇가지가 흰 눈으로 덮혀 있다.
지난주 대설이 지나면서 눈 소식이 잦다. 오늘 밤에는 대설경보까지 내려졌다.
거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포근하고 고즈넉하다. 이럴 때는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소리 없이 오는 눈처럼 그리운 누군가가 찾아올 것 같다.
기다리던 누군가가 문을 두드릴 것 같다.
‘푸른 숲으로 사라진 사슴은 끝내 오지 않고
눈은 고요히 내리고
숲으로 난 길에 다시 눈이 내리고
나는 다시 차가워진 난로에 불을 지핀다’.
어제 시를 정리하다가 몇 년 전 이맘때쯤 눈 오는 날 쓴 글 하나를 찾았다.
당시 시골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께 가끔 안부 전화를 하곤 했었는데
후두 기관절제 수술 후 어머니와의 첫 번째 통화 내용을 쓴 글이다.
어머니는 구순에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는 목수술로 말을 못한다
'아이고 우리 장자(長子) 전화네~! '
(네, 어머니! 건강하시고 별일 없지요?)
'그래, 내사 잘 있제~ 내 걱정 말거라'
ㅡ 그 다음 말씀도 뻔하다 ㅡ
'밥은 잘 묵나? 잘 묵어야 버틴다~'
(네, 잘 먹습니다. 애미가 잘 챙겨줍니다)
'목소리는 좀 나아진나~? 나는 몬 느끼겠다~!'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언제 한번 보겠노~? 니 얼굴 한번 봐야 할낀데'
(네, 목소리 더 좋아지면 찾아 뵙겠습니다)
ㅡ 마지막 멘트도 잘 안다 ㅡ '고마 전화 끊어라, 말 마이 하믄 힘들다'
(네,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또 전화 할께요)『어머니와의 대화』 - 이종철
나는 그 다음 말씀은 듣지 않고 끊는다. 당신의 안부는 알았으니까.
물론 어머니는 한동안 전화기를 귀에 대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들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