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내내 시 정리에 시간을 보냈다.
총 80여편의 시 중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은 23편인데
‘들꽃’, ‘2월에는’, ‘봄의 서정’ 처럼 이미 문예지나 지역 백일장에서 소개된 시를 포함하여
식물, 계절 또는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19편을 먼저 골랐다.
그 중에 2년전 이맘때쯤, 석양의 낙조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보고 쓴 ‘청단풍’ 이란 시가 있다.
지금 읽어보니 너무 상투적이고 유치해서 내가 읽기에도 민망하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순간의 감흥이 차올라 나름 잘 쓴 작품이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참에 아예 완전히 다른 장르의 시로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문학에 대해 나 자신이 더 성장한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창곡천변 산책 대신에 남한산성 등산로로 향했다.
일요일 창곡천변은 휴일 가족 나들이객들로 붐벼 조용한 산책을 즐기는 나에게는 불편하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는 다소 한가한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기로 두 달 전부터 정한 규칙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눈을 들어 쳐다본 산은 1주일 전과 달리
나무들이 여러가지 찬란한 색의 단풍잎을 달고
산골짜기를 따라 풀어놓은 물감처럼 뒤섞여 아래로 흐른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이팝나무, 상수리나무 무리와
참나무, 밤나무 무리가 채색하는 황갈색 스펙트럼, 그리고
주황색과 진홍색이 어우러져 눈이 다 시린 단풍나무까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실 사람의 눈에는 아름다운 단풍이지만
나무에게는 살기위한 특단의 조치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뿌리로부터 흡수하는 수분이 부족하여, 스스로 잎사귀를 떨궈내는 삶을 위한 자해행위.
가만히 보면 오래되고 큰 잎사귀부터 털어낸다. 아니 스스로 떨어진다.
멀쩡한 잎이 툭 땅 위로 떨어져 바람결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골짜기든 바위 아래든 자기가 영양을 공급했던 등걸 옆이든 무심히 자기를 버려 놓는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린다.
자기 몸이 썩기를.
썩어서 흙이 되든 거름이 되든 무엇이 되든, 그냥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