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판에 들꽃이 피어납니다.
저마다 다른 향기가 납니다.
키가 큰 꽃은 먼저 눈에 띄지만,
키가 작은 꽃은 찾아야 보입니다.
향기가 짙으면 키가 작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끔씩 꽃잎 하나 덜 자란 꽃이
더 짙은 향기가 나기도 합니다.
향기가 짙은 꽃은
벌 나비들이 더 잘 기억합니다.
땅에 떨어진 꽃씨까지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듬해에도
그 자리로 다시 찾아옵니다.이종철 – 『들꽃』
『들꽃』은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3년 전 어느 가을 날
성내천변을 걷다가 길 가에 가득 핀 들꽃을 보고 쓴 시다.
이름 모르는 들꽃들도 모두 제각각 아름다움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자세히 보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면 꽃에서 더 짙은 향기가 났다.
당시에는 시작(詩作)에 대한 공부를 전연 해본 적이 없어,
연의 설정이나 어조의 사용 등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고 쓰다 보니 동시처럼 되어버렸다.
지난 3년간 내 나름대로 시작을 독학으로 공부했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현대시 창작 교재들을 구해 틈틈이 읽고 베껴 써 왔다.
시의 구성, 시작과 마무리, 운율 어조 등 기본적인 것부터
비유와 상징을 통한 시적 묘사와 시적 진술 등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시집 발간 준비를 위하여 그 동안 쓴 시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이제 내 눈에도 어설픈 부분들이 여기 저기 많이 보인다.
아쉬운 마음에 위의 시를 여러 번 수정하고 삭제와 첨가를 반복해봤으나,
오히려 당시의 정서를 살리지 못하고 처음과는 전혀 다른 주제로 흘러가 버렸다.
결국, 부자연스럽지만 3연으로 되었던 연의 구분만 없애고 모든 글을 그대로 살렸다.
어설프지만 순수한 면은 살아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마치 한글을 막 깨치신 노인 분들이 쓴 시가 잔잔한 감동과 읽는 재미를 주듯이,
나의 초기작인 저 『들꽃』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깊어 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쓰고 싶다.